[아이티] 아이티가 가난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이유와 현상황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위치한 아이티는 인구 1천1백만명을 가진 나라로 영어로 읽을 때는 '헤이티'로 읽으며 수도는 포르토프랭스이다.
프랑스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아이티 크레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2019년 기준 1인당 GDP(PPP)는 1,272$로 (대한민국 31,846$)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이다.
참고로 같은 섬 동쪽에 위치한 도미니카 공화국은 8,282$ 이다.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플랜테이션 농업을 주로 하면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다 쓴 지역이다.
이들 흑인들은 18세기 아메리카 독립의 물결이 흐를때 단합하여 1804년 독립하였지만 오랫동안 프랑스, 스페인, 미국 등 외세의 간섭을 받았다.
아이티는 건국 후 설탕과 커피를 생산하여 무역을 하였는데 19세기 중반 이후 타 카리브해의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수출이익이 점차 떨어졌다.
프랑스가 독립 인정의 대가로 요구한 배상금 9천만 프랑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매년 국가 예산의 80%가 프랑스로 보내졌다.
이 빚은 1947년에야 미국의 중재로 모두 갚게 된다.
1843년부터 1915년까지 권력투쟁으로 21명의 대통령이 쫒겨나거나 암살 당하여 경제에 이어 정치적으로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31만명의 사상자와 150만명의 이재민을 만든 2010년 1월 12일 규모 7.0의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아이티는 다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다.
지진 이후 사회적 혼란으로 방화 절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났다.
수많은 구호물품과 도움의 손길이 아이티 국민들에게 보내졌지만 구호 물자를 받기에 낙후한 시설과 시스템으로 구호단체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런 국제사회의 지원에도 11년이 지난 2021년까지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도 복구가 다 되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기구가 만들어준 임시 천막에 살고 포장이 된 도로를 찾기 힘들다.
지금도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숙을 하고 많은 건물들이 지지이후 복구 되지 못한채 방치되고 있다.
아이티 최대 빈민촌 시티솔레이는 쓰레기가 가득찬 지역으로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워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간다.
UN평화유지군이 2017년 철수하고 아이티 정부의 공권력이 힘을 잃은 상황을 틈타 아이티는 70개가 넘는 갱단들이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들은 민간인을 납치하여 돈을 얻어내는 납치 비즈니스를 하며 자금을 모았으며 2020년에만 1,200명이 납치되고 570명이 살해 되었다.
2020년 11월, 17살 소녀를 납치하여 가족이 돈을 주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성폭행하고 살해 유기한 사건은 아이티 사회를 공분하게 하였다.
그들은 보통 월급이 16만원수준인 아이티에서 월급의 10배에서 50배에 이르는 돈을 요구하여 안그래도 살기 힘든 시민들을 나락으로 빠뜨린다.
히마니 등 아이티-도미니카 국경지대에는 1주일에 2번 비자나 여권이 없어도 물건을 살수 있는 자유무역시장이 열린다.
식료품의 60%이상을 수입하는 아이티인들에게 도미니카산 식료품을 구하는 소중한 창구이다.
이때 아이티 사람들은 집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소규모로 판다.
옆나라 도미니카는 이렇게 시장을 열어 아이티와 교역을 허락하고 있지만 이민을 받거나 망명을 받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도미니카 국적을 가지고 있는 아이티 출신 국민들을 아이티로 추방하기도 한다.
아이티 가나안 벨빌은 이렇게 도미니카에서 송환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현재 도미니카에 체류중인 아이티인은 50만명으로 추정되지만 도미니카 정부는 도미니카에서 태어난 아이티인의 후손들에게는 국적을 주지 않고 신청을 해도 미루고만 있어 학교도 병원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의 아이티의 정치상황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는 커녕 최악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아이티를 이끄는 조브넬 모이즈는 바나나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그는 2010년 지진 이후 회복하지 못하는 국가 경제 재건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는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야당과 끊임없이 싸워나갔다.
하지만 이미 지역내 뿌리를 내리고 기반을 마련한 70여 갱단은 무장혁명그룹 연합 G9을 만들어 공권력에 대항하였다.
모이즈대통령은 대통령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등 권한 강화 개헌을 추진하고 2021년 가을에 시작되는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런 행보는 시민들의 독재 공포증에 불을 질렀다.
결국 시민들은 2021년 2월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였고 이런 혼란을 틈타 갱단은 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훔쳐가고 포르토프랭스 교도소에서는 400명의 죄수가 탈옥하였다.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장 경찰로 이를 진압한 모이즈 대통령은 2021년 3월에 대대적인 갱단 소탕작전을 벌인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전투로 경찰 사상자가 대량 발생하고 장갑차 등 무기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다.
경찰들은 이 패배 이후 오히려 정부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빼앗긴 장갑차에는 돈을 쓸 지언정 다친 경찰을 위한 조치에는 둔감하다는 이유였다.
아이티 사람들은 약한 공권력을 인식하자 상점을 털고 방화를 하였다.
이런 소요로 1만 3천명이 임시 대피소로 피해야 했다.
영화에서 나올법한 이런 혼란 속에 지난 2021년 7월 7일 모이즈대통령이 괴한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는 배후를 알수 없는 콜럼비아 용병과 아이티계 미국인들에게 총알 12발을 맞고 사망하였다.
이후 클로드 조세프 총리가 대통령 대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미 5년 째 그 기능을 상실한 의회와 아이티와 엮이지 않으려는 국제사회의 방치 속에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