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미국] 미연방 초대 재무부 장관 _알렉산더 해밀턴

Jeffrey Choi 2021. 11. 29. 11:59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던 인물인다.

미국 건국 시기 혼란하던 금융과 경제체계를 확립했다고 평가된다.

그런 공로로 미국 10달러 지폐에 얼굴을 올리게 된다.

그는 군인, 법률가, 정치가, 사상가로서 엘리트 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식민지인 카리브해 서인도 제도 네비스 섬의 찰스타운에서 1755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찰스타운 위치

그는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의 4남으로 상인이었던 제임스 A. 해밀턴과 프랑스 위그노와 영국인의 혼혈인 레이첼 포셋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혼인관계가 아니었기에 아버지가 떠나자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두 아들인 제임스 해밀턴 2세와 알렉산더 해밀턴을 데리고 세인트크로이 섬으로 이사했다

해밀턴이 11살이 되던 해 2월 19일, 엄마가 황열병으로 숨을 거두자 형제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해밀턴의 형은 목수가 되기 위해 떠났고 해밀턴은 무역상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경제, 무역, 금융, 신용에 대한 실무 지식을 쌓아갔다.

 

1772년 17세가 되었을 때 허리케인이 자신이 사는 마을을 휩쓰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이 광경을 편지로 써보낸 것이 우연히 신문에 기고되고나서 뛰어난 글솜씨가 세간에 알려진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이 미국 본토로 유학을 보내주어 그는 보스톤에서 학교를 다니며 혁명직전 격동기의 사회를 몸소 느낀다.

 

미국이 1776년에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자 이 신생 공화국의 헌법을 정하게 되었다.

1787년 제헌 협의회에서 해밀턴은 종신 대통령이 주지사까지 임명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정부안을 제시하였다.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 Papers)』라고 불리는 에세이를 신문에 기고하여 연방 헌법 비준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헌법은 비준된다.
 

정부 수립 이후에 조지 워싱턴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 되어 미국 재정문제 해결과 정부 체계를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해밀턴은 독립전쟁 이후 남은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를 남부와 가까운 워싱턴 DC로 정하는 대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중앙정부가 진 빚을 각 주가 균등하게 갚게 하도록 설득하였다.

중상주의 정책을 신봉했으며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을 창설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그의 정적으로는 에런 버가 있었는데 버가 해밀턴의 장인의 지역구에 출마해 이기면서 틀어졌다.

제 3대 대통령 선거에서 해밀턴이 버를 대신해 성향이 정반대였던 토머스 제퍼슨을 지지하는 등 상호 비방 끝에 분노한 버가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하면서 1804년 권총 결투가 벌어졌다.

해밀턴은 버의 총을 맞고 다음날 사망하며 나이 50이 되기 전에 생을 마친다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고 자신의 고집이 강한 인물이었기에 견제세력이 있었고 정적이 많기는 했지만 허망한 결말이었다.

 

현대 미국인들에게 알렉산더 해밀턴은 연방정부의 기틀을 마련한 국가건설의 아버지로서 인기가 있다.

2015년 그의 일대기를 조명한 해밀턴이라는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올라오며 신드롬을 일으켜, 해밀턴이라는 인물 자체의 재평가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달러에 여성인물을 넣기로 하면서 노예해방운동에 앞장선 여성인 해리엇 터브먼이 정해졌는데 기존 인물 중에 누구를 뺄지 정할 때 10달러에 해밀턴을 빼자는 의견에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기도 하였다.

결국 2021년 새 화폐가 찍혀나올 때 20달러에 있던 앤드류 잭슨이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