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응변에 능한 배구
배구(裴矩)는 일생동안 북제, 수 문제, 수 양제, 우문화급, 두건덕, 당 고조, 당 태종 등 모두 세왕조와 7명의 주군을 섬겼다.
그는 80년을 살면서 5호16국 시대 말기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의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수양제 시절 문관의 인사와 훈봉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이부의 차관급 벼슬인 시랑 자리에서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장액(張掖, 현재 간쑤성 장예시)에서 서역각국과의 무역을 담당했다.
서방 상인이 수도에서 직접 교역하게 하고 서역의 정보를 모아 서역도기 총3권을 편찬하였다.
이 공로로 황제의 곁에서 궁궐 안팎의 연락을 담당하는 황문시랑이 되어 서북지역과 서역의 44개 나라를 관리하였다.
그는 수양제에게 고구려 땅이 옛 한사군 땅이었다고 말하여 고구려의 정벌에도 관여하였다.
그는 평소에도 조만간 대란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후하게 대우하였는데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수나라가 패하였다.
도적들이 성행하는데도 배구만은 살 수 있었다.
수나라가 망하고 618년에 당나라가 들어섰는데 배구는 당에서도 중용되었다.
그는 당태종이 관리를 시험해 보기 위해 뇌물을 뿌렸는데 이때 한 관리가 뇌물을 받아 죽을 뻔 하였던 걸 살려주었다.
일부러 뇌물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으로 죽여서는 안된다는 그의 말에 당태종도 처벌을 멈춘 것이다.
배구는 일생동안 자신이 모신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온 힘을 다해 보필하였다.
그러나 주군이 죽어도 의리를 같이 하지 않았고 주군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처세술의 대가로서 배구의 삶은 배울 점이 있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탐관오리나 십상시들과 궤를 달리한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