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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홀로 남은 무인의 선택 _칼의 노래

Jeffrey Choi 2021. 9. 11. 07:36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는 2001년 작이다.

대한민국 사람이고 책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작이다.

왜적과의 전투에서 한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이순신이라는 장수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이다.

1597년 백의종군 부터 1598년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까지의 남해안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있다.

 

모진고문과 수많은 싸움으로 녹초가 되어버린 중년의 남자는 민초를 유린한 왜적에 대한 분노로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현장상황을 모르는 철없는 임금은 투정만 해대고 도움을 주러 온다는 명군은 밍기적 거리며 전공만 가로채려 한다.

 

이순신의 업적은 워낙 훌륭하고 잘 알려져서 옮겨봐야 불필요한 반복이 될 것이다.

오히려 김훈이 특유의 필력으로 빚어낸 글 솜씨가 이 책의 백미이다.

어느 장을 펼쳐도 좋은 글이 있기에 임의로 펼친 장의 몇 구절만 옮긴다.

 

"새로 만든 배 7척을 진수시키던 날, 조선소 목수와 장졸들에게 돼지 5마리와 술 10말을 허락했다. 낡은 전선에서 뜯어낸 헌 목재로 만든 협선 10척도 그날 완성되었다. 진도의 작은 조선소에서도 전선 2척이 진수되었다. 진도에도 술과 고기를 보냈다. 고임목 위에 올라앉은 새 배는 푸르고 싱싱했다. 군사들이 밀고 당겨서 물 위에 띄웠다. 격군들이 함성을지르며 노를 일제히 물 위로 치켜들고 흔들었다. 노가 다시 물에 박히자 배는 나아갔다. 새 배는 새로 태어난 생선처럼 조심조심 바다로 나아갔다." - 1권 154page

 

난중일기 등의 기록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한글로 풀어내는 구절이다.

문장들이 짧고 간결한 김훈의 특징을 보여준다.

설명 사이사이에 푸르고 싱싱하다는 표현이나 새로 태어난 생선과 같은 표현이 문장을 살아숨쉬도록 해준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2권 48 page

 

하루하루 밥을 먹어야 하는 생명의 본질을 전쟁시기라고 생략하게 놔두지 않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작가는 곤궁함을 끼니에 대한 사색으로 나타낸다.

 

"봄에는 바다의 아침 안개가 일찍 삭았다. 물 위에 낮게 뜬 안개는 순하고 가벼웠다. 바람이 몰아가지 않아도, 멀리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아침 햇살이 스미면 안개는 섬 사이를 띠처럼 흘러서 먼바다로 몰려갔다. 해가 수평선을 딛고 물 위로 올라서면, 해뜨는 쪽으로 몰려간 안개의 띠들은 분홍빛 꼬리를 길게 끌면서 사라졌다. 걷히는 안개 너머로 먼 섬은 붉었고 가까운 섬은 푸르렀다." -2권 76 page

 

해안을 뒤덮던 안개와 그 속에 서서히 떠오르는 해의 모습은 이 몇 개의 문장을 통해 독자의 머리 속으로 들어온다.

 

"순천의 적은 나의 북쪽에 있었고 남해도의 적은 나의 남쪽에 있었다. 적과 적 사이의 바다에 나는 함대를 펼쳤다. 나의 타격 방위는 우선 북쪽 순천의 적이었고, 광양만은 적의 인후였다. 북쪽의 적이 남쪽의 적에게 손짓해서 바다로 불러내면 나의 타격 방위는 분산될 것이었다. 나는 적의 전체를 맞되, 차례로 맞아야 했다. 적과 적 사이의 육상 봉수 거점은 소탕되었다."  -2권 183 page

 

퇴각 준비를 하는 왜적을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무찌를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이순신의 모습이다.

이순신의 시각에서 묘사하는 글이지만 나라는 표현이 무던히도 많이 나온다.

글쓰는 방법을 배우되 배우고 나선 잊어야 한다.

 

칼의 노래는 사방에 적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홀로 서서 오직 백성들만을 생각하며 전장을 지켜온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오로지 자신의 공과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임금과 동맹국 장수들, 두려움에 떨며 지시를 듣기 거부하는 부하 장수들, 협조자에서 배신자로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백성들 모두가 그만 바라봤으며 그를 두려워 했다.

 

화가나도 참아야 했고 기회를 보아도 쉽게 나아갈 수 없었다.

전권을 위임 했으나 어떤 권한도 주지 않았다.

 

숟한 사람들의 지지가 있어도 내기 어려운 전과를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뤄내는 이순신을 보며 배우고 또 배운다.

그를 입체적이고 처절하게 그려낸 김훈의 필체를 보며 배우고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