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건 16

임기 응변에 능한 배구

배구(裴矩)는 일생동안 북제, 수 문제, 수 양제, 우문화급, 두건덕, 당 고조, 당 태종 등 모두 세왕조와 7명의 주군을 섬겼다. 그는 80년을 살면서 5호16국 시대 말기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의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수양제 시절 문관의 인사와 훈봉 등의 사무를 관장하던 이부의 차관급 벼슬인 시랑 자리에서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장액(張掖, 현재 간쑤성 장예시)에서 서역각국과의 무역을 담당했다. 서방 상인이 수도에서 직접 교역하게 하고 서역의 정보를 모아 서역도기 총3권을 편찬하였다. 이 공로로 황제의 곁에서 궁궐 안팎의 연락을 담당하는 황문시랑이 되어 서북지역과 서역의 44개 나라를 관리하였다. 그는 수양제에게 고구려 땅이 옛 한사군 땅이었다고 말하여 고구려의 정벌에도 관여하였다. 그는 평..

역사사건 2022.05.17

병영성과 울산 왜성

울산에는 여러 성곽이 있다. 언양읍성, 서생포왜성, 병영성, 울산왜성 등이다. 그중 현재 울산 중구 관내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 병영성과 울산왜성이다. 병영성은 2011년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으로 문화재의 정식 명칭이 정하여 졌다. 1417년부터 1894년까지 경상좌도병마절도사가 머물며 지휘소로 사용하였다. 이곳은 해발45m의 낮은 구릉에 타원형으로 축조되었다. 태종때 쌓았지만 세종때 방어기능이 강화되었다. 울산왜성은 일본군이 임진왜란때 축성하였다. 정확히는 1597년 정유재란때 왜장 가토기요마사의 지시로 병영성의 돌들을 가져와 지어졌다. 평야 가운데 솟은 50m 높이의 산에 만들어졌고 태화강의 하구가 성 남쪽과 접했기에 강을 통해 보급과 연락이 가능했다. 음력으로 1597년 12월 ..

역사사건 2022.03.24

미국 재벌의 각성 _ 존스타운 대홍수

1889년 5월 31일에 펜실베니아주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그날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 사이에 위치한 콘모프강의 사우스포크 댐이 급격히 차오른 높은 물의 압력으로 인해 낮 3시 15분에 붕괴되었고 바로 아래 위치한 존스타운은 2천만톤의 물폭탄을 그대로 맞았다. 댐에서 흘러내린 물은 주변의 나무, 건물 들을 집어삼키며 거대한 산사태가 난 것 처럼 밀려 왔고 댐붕괴 35분 만에 마을로 내려온 물은 10분만에 그 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홍수로 2,200명이상의 마을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당시에 댐이 있는 강 상류는 부자들의 모임인 Hunters and Fishermen 's Club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록펠러, 카네기 등 해당산업의 독점적 지위로 큰 부자가 된 그들은 댐이 있는 지역을 레저 공간으로 ..

역사사건 2022.03.09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 속 우크라이나 대기근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1932년~1933년에 스탈린 치하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이다. 이 기간동안 소비에트연합(이하 소련) 전역에서 기근이 발생하였는데 작게는 600만명에서 많게는 1,500만명의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우크라이나에서만 350만명이 굶어 죽었기에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Holodomor) 즉, 기아를 통한 대량살인(Mass killing by hunger)이라고 명명된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민족주의가 강하여 소련과 함께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1917년 2월과 10월에 있었던 러시아 혁명 이후에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 3월에 맺어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소비에트 러시아도 ..

역사사건 2022.02.20

미국의 부를 만든 홈스테드법

1862년에 제정된 미국의 자영농(自營農) 창설법은 홈스테드법( Homestead Act)으로도 불린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 중이었지만 서부 개척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서부의 미개척 토지 160에이커를 미국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한 사실이 없는 사람이 5년간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법이었다. 5년간 살지 않아도 6개월만 살아도 1에이커의 토지를 1달러 25센트의 염가로 구입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었다. 많은 농부들이 공짜 혹은 염가로 땅을 얻기 위해 서부로 몰려들었다. 미시시피강 서쪽의 미개척 지역은 신속히 개척되었고 동부산업자본(東部産業資本)이 서쪽으로 몰려들었다. 1883년까지 약 2,300만 에이커의 토지가 개척자들에게 나눠졌고 미국 각지에 정주자(定住者)가 증가하게된 계기..

역사사건 2022.02.19

홍건적의 침입

홍건적은 중국 원(元) 말기 하북과 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한족 반란군을 칭하는 말이다. 도교와 불교에서 기원한 중국 민간종교인 백련교를 믿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봉기하였다. 한(漢) 말기 머리에 노란색 수건을 두른 황건적처럼 이들이 붉은색 수건을 둘러 홍건적이라 불렀다. 원을 멸망시키고 1368년에 명(明)을 세운 홍무제 주원장이 홍건적 출신이다. 이런 홍건적들은 1350년 경에 크게 두 세력을 형성하는데 한산동이 수령인 동계홍건군과 서수휘가 이끌던 서계홍건군이 그것이었다. 원의 공격과 내분으로 두 세력이 멸망한 1360년 경에는 홍건적들은 뿔뿔이 흩어져 독자적 활동을 한다. 이 무렵인 1359년 11월에 원에 쫓겨 요동으로 물러선 홍건적 3천명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지역을 약탈한다. 한달 뒤 12월에는..

역사사건 2022.02.08

영국 캔터베리

켄터베리는 이름답게 앵글로색슨 시대 때 켄트 왕국의 수도였다. 잉글랜드 남동부의 켄트주 동쪽에 위치하고 런던에서 남동쪽으로 약 85Km 떨어진 곳에 있다. 프랑스와 연결된 도버가 지근거리에 있다. 영국의 제프리 초서는 14세기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다.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이야기 책으로 알려진 이 글은 헨리 2세에게 암살된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을 기리는 성지 순례가 배경이다. 교황청의 대리인으로서 영국의 왕권에 도전한다는 명목으로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헨리 2세의 부하들에 의해 벌어진 암살은 전 유럽에 알려졌고 이후 토머스 베켓은 순교자가 되고 캔터베리는 순례자들이 모이는 성지가 되었다. 인구는 5만 5천명의 이 도시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의 본산이자 가톨릭의 성지인 것이다. 유럽 학생들의 수학여행지..

역사사건 2022.02.07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샌안드레아스 단층

1906년 4월 18일 새벽 5시 12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샌프란시스코에 리히터 8.3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3천명이 넘게 사망했고 이때 발생한 화재는 72시간동안 시가지의 2/3를 태웠다.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 약탈이 일어나고 이를 막기위해 도시에 군대가 배치되어 약탈자 500여명을 사살하였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진이 일어날 것을 예상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난 일본에는 지진계가 설치되어 있어 구하려면 구할 수 있었기에 자연재해라기 보다는 인재(人災)에 가까운 피해였다. 이후 또 한차례 강력한 지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다. 1989년 10월 17일 오후 5시 4분 진도 7.1의 지진이 15초간 샌프란시스코를 덮쳤다. 1906년 지진에 비해 강도가 낮았고 그간 지진에 대..

역사사건 2022.02.02

[조선] 세금의 이동과 분배의 커맨드센터 광흥창

기록이 있는 시대부터 조세는 곡물로 받아왔고 고려와 조선시대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의 특성상 지방의 조창에서 배을 통해 경창으로 (조운, 漕運) 옮겨졌다.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세곡미를 실은 배들은 한양에 있는 창고인 군자창(軍資倉), 풍저창(豐儲倉), 광흥창(廣興倉)으로 주로 모였다. 그 중 광흥창은 서강(西江)의 북쪽 즉, 현재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 옆 공민왕사당 앞(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42-17)에 있었다. 광흥창에 모인 세곡들은 조선의 관료들의 녹봉(祿俸)으로 지급되었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이 '녹'이고 특수한 경우 지급되는 것이 '봉'이다. 광흥창은 1308년 충선왕이 고려시대 내내 내시들이 수장을 맡아 녹봉을 지급하던 기존의 좌창을 광흥창(廣興倉)으로 이름을 바꾸고 ..

역사사건 2022.01.05

[중국] 포로가된 정통제의 복위 _탈문의변

명나라 정통제가 이복동생인 경태제를 폐위하고 복위한 사건을 이르는 탈문의 변은 1457년에 일어났다. 8년전인 1449년에 몽골족인 오이라트 부족과 명나라 군대의 싸움에서 당시 명나라 황제 정통제가 포로로 사로잡혔다. 다행히 요나라를 불러들여 자신이 섬기던 황제를 죽이고 후당을 멸망시키고 만리장성 아래 연운16주를 갖다바친 후 936년 후진을 세우고 허울만 황제가 되는 석경당의 사례와 같은 막장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역분쟁으로 그동안 다퉈왔던 오이라트에게 비참하게 패하여 현재 하북성의 토목보에 숨어들었다 잡힌 이 토목의 변으로 긴급하게 정통제의 이복동생 주기옥이 경태제로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전 황제가 버젓히 살아있는데 선위를 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황제가 세워졌으니 2명의 황제가 존재..

역사사건 202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