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있는 시대부터 조세는 곡물로 받아왔고 고려와 조선시대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의 특성상 지방의 조창에서 배을 통해 경창으로 (조운, 漕運) 옮겨졌다.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세곡미를 실은 배들은 한양에 있는 창고인 군자창(軍資倉), 풍저창(豐儲倉), 광흥창(廣興倉)으로 주로 모였다. 그 중 광흥창은 서강(西江)의 북쪽 즉, 현재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 옆 공민왕사당 앞(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42-17)에 있었다. 광흥창에 모인 세곡들은 조선의 관료들의 녹봉(祿俸)으로 지급되었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이 '녹'이고 특수한 경우 지급되는 것이 '봉'이다. 광흥창은 1308년 충선왕이 고려시대 내내 내시들이 수장을 맡아 녹봉을 지급하던 기존의 좌창을 광흥창(廣興倉)으로 이름을 바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