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인도] 깨달은 자 _부처

Jeffrey Choi 2021. 8. 1. 21:08

현재 네팔의 룸비니지역에 위치한 작은 왕국인 샤카에서 정반(숫도다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고타마 싯타르타가 태어난다.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

 

당시 그 지역은 몇 세기전 아리아족의 침입 이후 바라문이 최고계급을 형성하는 등 계급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정해지는 힌두신앙의 기초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는 높은 계급에 속했기에 소년기에는 어려움 없이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정반왕은 이웃의 강국 코살라국의 위협에서도 후계자를 두게 되어 안심하였지만 싯타르타는 아버지의 마음과는 다르게 젊은시절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출가를 결심한다.

 

" 내가 출가하기 전 아버지는 나를 봄, 여름, 겨울 세 개의 궁전에 머물게 했다. 궁전 가까운 곳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언제나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내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시종들이 온몸에 전단향을 바르고 비단옷을 입혀주었으며, 언제나 일산을 받쳐들고 밤에는 이슬에 젖지 않고 낱에는 볕에 그을리지 않게 도와주었다. 나는 항상 진기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배고픈 줄 몰랐다. 내가 별궁에서 놀 때는 늘 아름다운 미희가 옆에서 즐겁게 해주었으며 들로 나가 놀 때는 날랜 기병들이 주위를 경호했다. 나는 이렇게 풍족하게 지냈다. 어느날 나는 농부가 밭을 갈다가 쉬는 것을 보고 나무 밑에 앉아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 건강하다고 언제까지 건강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젊다고 언제까지 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살아있다고 언제까지 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병들고 고통을 받는다. 지금 나의 건강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또 누구나 늙고 쇠약해져서 고통을 받는다. 지금 나의 젊음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또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지금 나의 삶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을 닦지 않는다. 젊고 건강하다고 거들먹거리며 방일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29세가 되던 해 가족을 버리고 왕궁을 나왔다. (출가재일/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들을 만나 보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은 왜 고통스러운가' 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갈비뼈가 드러나는 극단적인 고행 후에 몸을 망치는 고행은 옳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집을 나온지 6년만인 35세 때 먹고 마시는 보통 사람이 되어야 인간 본연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싯타르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로 하였다.

그는 부다가야의 한 마을에서 우유죽을 마시고 목욕을 한 후 보리수에 앉았다.

나무 아래 홀로 밤을 새는 명상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성도절/음력 12월 8일)

 

명상 도중에 출가 전날 밤에도 싯타르타에게 권력과 부귀를 바탕으로 한 욕망을 부추겼었던 욕망의 상징인 악마 마라(魔羅)가 딸을 보내 유혹하였다.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그는 마음의 평온을 찾고 붓다가 된 것이다.

 

그는 한사람 한사람이 붓다이고 세상이란 것과 초월의 경지인 너바나는 일상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를 감사해하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곧 수행임을 알았다.

탄생과 죽음, 지난 자신의 삶등 인간사의 모든 고통을 높은 산이 구름 아래 변화무쌍한 날씨를 그저 관망하듯 하였다.

 

이렇게 싯타르타는 깨달은자 즉, 붓다(佛陀)가 되어 갠지스강을 건너 사르나트(녹야원)로 갔다. 
그는 세상 모든 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를 고민하였다.
중도 즉 극단을 버리는 것을 중요시 여겨 자신을 의심하는 다섯 수행자를 대상으로 깨달음을 설파하였다.
감동받은 수행자는 붓다의 제자가 되고 힌두교의 브라흐마가 세상에 진리를 설파를 요청하였다.

그의 설법은 주변 지역에 널리 알려져 근처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까지 퍼졌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으로 나눠 각자의 역할만 강조해 온 그 시대에 현명한 사람이 고귀하다는 혁명적인 붓다의 사상은 사람들은 열광케하였다.

 

붓다는 사람들이 수행하면서 자신과 같은 긴 시행착오(굶고 고통을 일부러 받는 등)를 하지 않도록 상가(승가) 조직을 만들었다.
상가는 함께 생활하며 수행을 돕는 공동체로서 성별, 카스트에 상관없이 조직에 참가할 수 있었다.

상가에 참여한 사람들은 깨달음으로 가는 밑바탕이 되는 참선수행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뜨지 않고 평온하게 만든다.
사람은 늘 변화하고 자아도 늘 변하기에 물과 같으니 그 물이 흘러가서 모인 큰 강과 바다같이 평온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는 씨줄 날줄과 같이 우주 만물이 늘 연결되어 있음과 행복은 다른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자신과 타인의 괴로움에 대한 자비심이 생겨난다.

 

붓다는 수백명이 전쟁에서 희생되던 그 시절 세상의 폭력은 마음 속 폭력의 연장이므로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게 하라는 말씀을 전한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3가지 독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베품, 자비, 지혜를 구하면서 잠재울 것을 얘기한다.

 

이렇게 설법과 상가조직을 통해 깨달음을 전파하던 붓다는 음행을 하지 않고 재산을 탐하지 않는 제자를 속세로 보냈다.
그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내려주며 이를 통해 한끼 식사거리를 마련하는 탁발로 살아간다.

 

세상에 진리를 전파하던 붓다는 80세가 되어 여느 사람들처럼 늙어 허리가 구부러졌다.

그는 쿠시나가라에서 상한 음식(버섯죽)을 공양받았으나 공양한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머리는 북쪽,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게 옆으로 눞혀 달라고 하였다.

수많은 제자가 우는 와중에도 태어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라며 깨달음을 추구하라는 마지막 말을 하고 열반하였다.

(열반재일/음력 2월 15일)

 

윤회에서 벗어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한 그는 자신의 사후 제자들이 스스로 빛이 되길 바랐다.

진흙에서 태어나 수면 위에 아름다운 연꽃을 맺듯 붓다는 연꽃과 같은 삶을 살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