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독일] 미적분과 이진법으로 현대 수학의 꽃을 피운 학자 _라이프니츠

Jeffrey Choi 2021. 7. 22. 20:17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알아도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를 모르는 사람은 많다.

 

이 둘은 동시대를 살았고 둘 다 미적분의 개념을 발명해낸 사람들이다.

 

1646년 7월 1일 작센에서 태어난 라이프니츠는 작센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라이프치히에서 살았다.

그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등 다루지 않은 과목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생존하던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실용학문의 시대가 열려 있었기에 그에 맞춰 미적분 등 사회현상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공식이 필요하였다.

 

미적분은 1684년에 독일 학회에서 발표된 라이프니츠의 논문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당시에는 발표시기가 빠른 라이프니츠가 먼저이냐 이미 학자들 사이에 미적분을 개발하고 묵혀두었다고 알려진 뉴턴이 먼저냐가 쟁점이었다.

뉴턴은 1687년에 프린키피아를 통해 미적분의 개념을 발표하였다.

 

후에 미적분은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각각 발명한 것으로 인정이 되는데 현대 학계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이다.

그 이유는 미분계수를 정의하고 기호와 이론을 고안한 방식이 다른 학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논리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절에는 뉴턴과의 미적분 문제 풀기에서는 패배를 하여 당시 학자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되는 등 첫번째 발명자로의 대접을 받지는 못하였다.

 

라이프니츠는 당시 덧셈과 뺄셈 밖에 하지 못하던 파스칼이 발명한 계산기(1642년 발표)를 개선하여 톱니바퀴식의 기계식 사칙연산 계산기(1673년 발표)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이 계산기는 맨 윗줄에 위치한 파스칼 계산기 아래에 곱셈기를 넣어 황동으로 제작하였다.

 

그는 이진법 체계도 다듬어 현재 전원이 들어오면 1, 안들어오면 0 으로 구분하는 디지털 컴퓨터의 시대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그의 또한 수학에서 수와 기호로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듯이 다른 학문에도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보편언어를 구상하여 자연언어 대신 기호를 사용하는 기호논리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이외에도 물리학, 신학, 형이상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유를 하였고 현대의 인터넷과 같은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노버의 궁중고문과 도서관장 등으로 활동하였지만 뉴턴과의 미적분 최초 발견자 논쟁을 통해 많은 비난을 받았고 말년에 경제적으로 힘들었으며 질병에 시달리며 외롭게 생을 마감하였다.

장례식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고 하인만이 올 정도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라이프니츠는 동 시기를 산 위대한 과학자인 뉴턴의 이면에 가려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꾸준히 학문적 성과를 내온 인류사에 기록될 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