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탈리아] 주눅들지 않는 독설가 기자 _오리아나 팔라치

Jeffrey Choi 2021. 10. 18. 17:53

세계를 주름잡던 희대의 권력가들과 인터뷰를 한 것 만으로도 화려한 경력인데 그들의 약점을 후벼파는 질문을 하던 인터뷰어가 있었다.

오리아나 팔라치라는 이름의 이 여기자는 1929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2006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무례한 인터뷰 일화들은 세간에 아직까지 각인되어 있다.

30대에는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였고 40이 다 되어서 멕시코 학생시위, 50대에 이란혁명과 같은 아수라장에서 종군기자로의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현장의 생생함을 뛰어난 문장력으로 기사로 써냈고 서방세계에 알려지게된다.

 

그렇게 얻어진 자신의 명성을 활용하여 세계 곳곳의 정치인들과 독재자들과 인터뷰를 하던 50대 이후의 그녀는 콧대가 높았고 그만큼 용감하고 무모하였다.

 

일례로 민주당 선거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은폐하려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역인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와 1972년에 인터뷰하였다.

그는 요직을 거치며 중국과 데탕트를 성사시키는 업적도 이뤄내 영웅시 되었는데 이 인터뷰로 키신저의 명성은 박살났다.

팔라치가 인터뷰 내내 아니꼽게 행동하던 그에게 대통령보다 더 많은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묻자 키신저는 우쭐하며 "혼자 말을 타고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곳에 있는 카우보이와 같다"며 자신을 표현했다.

마치 업적을 혼자 이룬 것 같이 적혀진 인터뷰 내용을 보고 뒤늦은 후회를 하여도 국민들에게 단단히 찍혀버린 키신저였다.

트럼프와 함께 자리한 키신저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일으킨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원칙주의자였는데 그와의 인터뷰는 반드시 차도르를 쓰게끔 되어있었다.  경호원의 지시대로 처음에는 몸을 꽁꽁 싸맨 차도르를 입고 얼굴만 달랑 내놓고 인터뷰를 하던 팔라치는 인터뷰 도중 차도르 찢어버렸다.

호메이니 초상화

팔라치는 그외에도 인도의 간디, 중국의 덩샤오핑, 파키스탄 대통령 부토,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이스라엘 총리 골다메이어 등 시대의 아이콘들과 인터뷰를 하였고 갑과 을이 바뀐 인터뷰 내용으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덩샤오핑과 팔라치

팔라치의 인터뷰 방식 영미권 대학 저널리즘 교재에 소개될 만큼 기존의 인터뷰 방식과 상반된다.

공격적인 질문으로 상대를 지치게 하거나 자극한 뒤 진심을 털어놓게 하는 방식이다.

 

팔라치는 자신의 인터뷰 모음집 서문에 “수 천만 가지의 분노를 품고 인터뷰에 임했다”고 썼다.

그럼에도 팔라치와 인터뷰를 하기위해 명사들이 줄을 섰는데 그녀와 인터뷰를 한번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명사’에 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깔아놓은 길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당시에는 돌아이, 이단아로 불리지만 그것이 아이콘이 되고 인정받기 시작하면 똘끼는 창의성이 되고 돌아이는 대가로 불린다는 것을 오리아나 팔라치를 통해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