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무와 당근의 껍질을 벗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마는 무를 구워 당근과 함께 참기름으로 볶는 조리방법을 설명해 주지만 엄마가 심심할까봐 그냥 물었던 딸은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
요코야마 의원을 운영하다 주변에 큰병원이 들어오고 나이도 들어 은퇴를 한 아버지는 동네 산책을 나간다.
조깅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과 비교되게도 지팡이를 들고 느긋한 걸음이다.
아버지는 바다가 보이는 육교를 건너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3남매 중 둘째 누나가족과 셋째 료타가족이 첫째 준페이의 10주기를 맞아 본가에서 모이는 날이다.
누나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미리 와있었고 료타는 3년전에 남편과 사별한 과부 유카리와 최근 결혼을 하였는데 유카리의 아들 아츠시와 함께 기차를 타고 왔다.
형 준페이는 10년전 집 앞 바닷가에서 요시오라는 소년이 물에 빠진걸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아이가 없었기에 준페이의 아내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서 이제는 준페이에 대한 기억은 가족들에게 밖에 남아있지 않다.
누나는 자동차 판매원인 매형과 결혼하여 두 남매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부모님의 의원으로 이사와서 같이 살 계획을 하고 있다.
엄마의 머릿 속에 장남 준페이와 함께 한 추억은 언제나 생생하여 어떤 주제가 나와도 준페이의 기억과 매칭이 되고 있었고 차남인 료타의 입장에서 섭섭함을 느낄 정도였다.
같이 옥수수튀김을 먹고 수박깨기를 하고 사진을 찍던 누나네 식구가 돌아가고 료타네 식구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유카리는 어머님이 료타의 파자마만 사놓고 아츠시의 파자마는 사놓지 않은 것과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아츠시만 거리감이 있게 '군'이라고 붙여 부르는 것이 못 마땅하다.
료타는 그래도 엄마가 칫솔 3개를 준비하였다며 엄마가 미처 신경을 못 쓴것이라 달랜다.
하루밤 잠을 자고 아침에 료타는 아츠시를 데리고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항상 바닷가까지 가지 않고 돌아오던 아버지도 바닷가까지 걷는다.
료타네 식구 마저 버스를 타고 돌아가고 마중나왔던 아버지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다음 설이나 보려나?"라고 한다.
버스 뒷자리에 앉은 료타는 이번에 왔으니 설에는 오지 말자고 하고 며느리도 부담되실 테니 다음엔 자지말고 가자고 한다.
매년 준페이가 구한 소년인 요시오가 기일마다 찾아 뵙는 것, 준페이의 묘에 꽃을 갈고 물을 부어주는 것, 아츠시가 죽은 아빠처럼 피아노 조율사가 되고 싶지만 만약 안 되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 것 등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 캐릭터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말미에는 결국 아버지, 어머니는 몇 년안에 돌아가시고 료타는 그 사이 시간이 있었음에도 아버지와 요코하마 구장에 가는 것도 못 했고 엄마가 소원이라고 했던 '아들 차를 타고 쇼핑가는 것'을 이뤄드리지 못 했다.
그래도 형의 10주기 때는 면허도 없던 료타가 이제는 차를 타고 와서 부모님의 묘지에 물을 붓고 유카리와의 사이에 낳은 딸의 손을 잡고 엄마와 했던 나비 얘기를 해주며 내려간다.
부모와의 추억을 자식들에게 내리새기는 모습이 찡하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2가지인데 첫째는 굉장히 정적인 카메라의 이동이다.
주인공들이 움직이는 장면 마저 한 곳에 고정해 둔 카메라가 잡고 있어 사람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까지를 찍는다.
다른 하나는 '죽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이다.
같은 시기 살아본 적도 없는 아인슈타인이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듯 부모님과 자녀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시간 속을 흘러 간다.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하고 허투루 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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