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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고 싶지 않은 열망 성씨(氏)

Jeffrey Choi 2021. 8. 30. 13:38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무한히 존재할 수 없다.

돌은 바람에 의해 풍화하고 물은 햇볕에 의해 마르며 생명은 수명을 다하면 죽는다.

 

이렇게 각자의 삶을 마감하고 나면 세상은 누구도 그 존재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구전과 기록을 통하여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것에 대해 대대로 정보를 전한다.

 

그 중에 가장 역사가 깊은 존재에 대한 기록이 성씨이다.

한국의 성씨는 삼국시대 때 중국의 한자식 성과 이름을 차용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고씨(高氏)라고 전하고 있고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부여씨(夫餘氏)라고 전한다.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씨가 번갈아 가며 왕위를 차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발해는 대조영이 대씨(大氏), 고려는 왕건이 왕씨(王氏) 성을 가지고 있었다.

 

1055년 고려의 문종 9년에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합격 할 수 없다라는 봉미제도가 시행된 것으로 보았을때 지배계층은 그 즈음 성과 본관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 족보가 보급되었고 조선시대 2차례의 외적 침입 이후 문란해진 사회상을 반영하여 족보가 위조되면서 양인등도 성씨를 쓰기 시작하였다.

1908년 민적법 시행으로 모든 사람이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 되면서 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

 

2015년 기준 김(金)씨가 천만명이 넘고(10,689,959명) 이(李)씨가 7백만명(7,306,828명), 박(朴)씨가 4백만명(4,192,074명)이 넘는다.

그 뒤로 최(崔)씨, 정(鄭)씨 가 2백만명이 넘고 강(姜)씨, 조(趙)씨, 윤(尹)씨가 1백만명이 넘는 성씨이다.

9위 장(張)씨 부터 53위 천(千)씨 까지가 1백만명에서 10만명사이의 성씨이다.

54위 방(方)씨 부터 109위 황보(皇甫)씨 까지가 10만명에서 1만명 사이의 성씨이다.

112위 가(賈)씨 부터 151위 도(陶)씨 까지가 1천명 사이의 성씨이다.

 

1천명 이하 소수성씨는 4,431개로 대부분 10명 이하이다.

 

귀화자들을 비롯하여 성씨를 새로 만들어 독립하는 사람등 다양한 이유로 민적법 시행시 500개 이하였던 성씨가 100여년만에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각 성씨는 본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조상이 주로 생활했던 터전을 칭한다.

예를들어 최씨의 본관을 살펴보면 경주, 전주, 해주, 강릉, 탐진, 수성 등 다양하다.

성씨는 오랜 남성중심 사상을 보여주는 현상이며 서서히 그 역할이나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

 

내가 경주최씨 라면 신라 6부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예로서 그 시절로 부터 2천년이 흐른 지금도 세계 곳곳 어디에 살아도 내 조상이 최씨였고 경주에 터를 잡고 살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경주최씨 중시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일본의 경우 성씨가 정착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성이 이름처럼 쓰인다.

성이 가문을 상징하기 보다 조상이 이전에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 정도를 알 수 있다.

 

아랍의 경우 자신의 이름 뒤에 아버지의 이름과 할아버지의 이름이 온다.

그럴 경우 후손 3대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조상의 흔적을 새기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다.

다만 성씨가 권력의 대물림이나 기득권의 상징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그에 맞춰 성씨도 그 형태를 달리하건 점점 존재가 옅어지던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