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흔히 유교라고 부르는 것은 성리학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정치가가 갖춰야할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현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공자가 주공단(周公 旦)을 본받아 이상화 하여 만들었고 이것이 시대를 내려오며 남송의 주희(朱熹,1130~1200)가 태극, 이, 기 라는 개념을 종합하여 성리학으로 정리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은 사물의 이치를 궁리해서 깨달음에 다다른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였다.
조선시대에서는 이것을 ‘신유학’이라고 하여 기존의 공맹순의 유학과 구별해서 불렀다.
양명학(陽明學)은 명나라 중후기에 왕수인(王守仁,1472~1528)이 주창한 사상으로 그의 호인 양명을 딴 학문이다.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세계관으로 삼아 누구나 마음에 세상의 이치가 있음을 깨닫고 실천하려 노력하면 군자의 도를 이룰수 있다고 본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유학의 경전인 '대학'을 해석하는 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학'에서 강조하는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 중 격물치지에 대해 주희는 ‘사물의 이치를 철저하게 파악하여 앎을 이룬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왕수인은 격물치지를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해서 앎을 이룬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주희는 '진리탐구'를 왕수인은 '도덕실천'을 중요시 여겼다.
이것이 오늘날 성리학을 이학(理學),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주희는 격물치지의 ‘격(格)’을 ‘사물의 이치를 철저히 파악한다’, 즉 ‘궁리(窮理)’의 뜻으로 이해한 반면 왕수인은 격에 자격의 뜻이 있다고 하여, 격을 ‘바르지 않은 것을 바르게 한다’, 즉 ‘정기부정(正基不正)’으로 이해했다.
주희에게 물(物)은 나와 따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이지만 왕수인에게 물은 바를 수도 있고 바르지 않을 수도 있어서 내가 주체가 되어 파악하여야 할 ‘주관적 대상’이 된다.
주희에 비해 후대인 왕수인이 견습록에서 주희를 비판하면서 “각각의 개별적 사물에서 이를 구한다는 것은 가령 부모에게서 효의 이(理)를 구한다는 말과 같다. 부모에게서 효의 이를 구한다면 효의 이는 과연 내 마음에 있는가, 아니면 부모의 몸에 있는가?” 라고 하며 부모를 모시는 데 불효한 것이 바르지 않은 것이라면, 이런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아 효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격물’이라고 하였다.
쉽게 말해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
주자가 성리학에서 도덕의 실행 주체를 귀족계층으로 둔 반면 양명학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주체로 하였다.
서양으로 치면 가톨릭이 성리학이며 프로테스탄티즘이 양명학이다.
가톨릭은 교황의 권위를 절대화하지만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인이 바이블이나 기도를 통해 교황의 개입 없이 신과 접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에도 16세기 양명학이 대두되었지만 당시 기득권들의 전횡에 성리학을 밀어내지 못한다.
특히 이황이 양명학을 '사문의 화'라고 비판하면서 이단처럼 여겨졌다.
이것이 한국의 유교가 지극히 법도를 따르게 되고 현실을 보기보다는 이상에 집착하고 기득권이 권력을 세습하는데 이용되는 것이 시대의 발전에 눈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는 큰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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