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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업인으로서의 경영철학 _정주영 특강

Jeffrey Choi 2021. 11. 17. 04:09

정주영은 급격한 한국 경제성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영인이다.

그가 틀을 마련하고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키운 현대라는 회사는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수많은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

 

정주영은 태어날 때 일제시절이었고 6살부터 삼강오륜을 배웠고 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면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지런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도시에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몇번을 가출하고는 결국 인천에 정착하게 된다.

부두노동자, 채석노동자 등을 거치고 정미소에서 일을 하다가 쌀가게를 내게된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일제가 개인이 쌀을 못 팔게하자 자동차 수리공장이 돈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고리업자에게 돈을 빌려 함석집을 사서 수리를 시작한다.

28일 만에 불이나서 공장을 날려먹고 고리업자에게 다시 돈을 꿔 달라고 하여 3,500원을 받아 처음부터 시작한다.

수리사업으로 빚을 다 갚고 장사가 잘 되어 가던 중 일제의 철 수탈이 시작되어 수리공장 문을 닫는다.

이후 수리공장 할 때 차를 고쳐준 인연으로 황해도 홀골 보광광합 주식회사라는 일본인 회사의 광석을 제련소로 운반하는 하청을 받아 일을 하였다.

3년 후 일제가 패망하여 대한민국은 독립하였고 일본인의 간섭이 없어지자 자동차공장을 다시 시작하였다.

차 수리 계약으로 관청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 수리에 비해 훨씬 큰 금액으로 수주를 받는 건설업자를 보고 건설업을 하기로 한다.

미군 공사를 따내며 일거리가 있으면 위험한 곳에 가서도 건설을 하여 이름이 알리고 돈을 벌었다.

6.25가 나서 부산에 임시수도가 있을 때 화폐개혁을 해서 1/100로 가치를 떨어뜨렸는데 그게 3년만에 다시 100배로 뛰는 일이 생겼다.

이 여파로 낙동강 다리 공사 할때 자재가격이 자고일어나면 뛰어 큰 빚을 지게되어 한동안 힘들었다.

이후 어떤 공사라도 끝까지 완료하는 정신으로 임해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4.19 혁명 이후 사회분위기가 건설업자들이 권력과 손잡고 부를 쌓았다고 하여 비판이 많았는데 이때 정주영은 관급공사만으로 진행하던 당시 건설업 관행을 깨고 스스로 성장하기로 마음먹는다.

1960년대 초부터 외국으로 나가 태국 도로공사, 사하라 교량공사, 괌섬 주택공사, 파푸아뉴기니 지하수력발전소공사, 베트남 군사기지공사를 하였다.

생소한 곳에서 건설을 하며 익힌 경험들이 1970년대 초 중동의 건설이 터지자 빛을 발하여 현대건설은 크게 성장한다.

1960년대 후반에는 해외 산업에 가장 중요한 조선산업에도 진출하기로 하였다.

영국 버클리은행에 대출을 받고 그리스의 레바노스라는 선주에게 26만톤배 2척 수주를 따내어 1975년 울산 미포에 조선소를 만들어낸다.

현대미포조선

조선소를 짓고 2년만에 배를 만들어내자 현대건설의 이름은 더 올라가고 사우디아라비아의 13만톤의 엄청난 강재가 드는 대규모 산업항까지 짓는 기회를 만들어낸다.

 

이렇게해서 현대를 1980년대에 이미 해외매출이 80%에 달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정주영은 성공의 비결은 평범하다고 말한다.

 

1. 정규 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과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것이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것을 해결한다.

2.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미래에 대해 항상 희망이 차있었다.

3. 열심히 일을 하면 좋은 날이 온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다음의 일을 만든다. 기회는 활동을 해야 생긴다.

4. 5시에는 일어나서 회사까지 걸어다니고 6시에 정구를 하기도 하면서 건강관리한다. 정신이 건강하면 육체도 건강할 수 있다.

5. 잘될때의 기쁨도 좋지만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데서 오는 기쁨도 그에 못지않게 좋다.

6.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정주영 청운동 자택

그는 2001년에 타개하고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강연은 남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차오르게 한다.

그의 인생사 만큼 멋진 자신의 인생사를 만들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