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축객서(諫逐客書)는 '간할 간, 쫓을 축, 손님 객, 문장 서'를 쓰며 진(秦)나라의 정치가 이사가 나라안의 외국인을 모두 쫓아내겠다는 '축객령'에 반대하며 당시 진의 왕이며 차후에 시황제가 되는 영정(贏政)에게 기원전 237년에 올린 상소문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이 듣기로 관리들이 객경들을 내쫓기 위해 논의를 한다던데 생각해보면 이는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목공께서는 인재를 구해 서쪽으로는 융에서 유여를 얻었고 동쪽으로는 완에서 백리해를 얻었으며, 송나라에서 건숙을 맞아 왔고 진(晉)나라에서 비표와 공손지가 왔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秦)나라 출신이 아님에도 진 목공께서 그들을 등용하여 스무개의 나라를 합병하고 마침내 서융을 재패했습니다.
효공께서는 상앙의 변법을 채택해 풍속을 바꾸니 백성은 번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으며, 백성들은 부림당하는 것을 즐거이하고, 제후들은 친해지고 복종하며 초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사로잡아 점령한 땅이 천 리에 달하여 지금까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혜왕께서는 장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천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 파촉을 합병하고 북쪽으로 상군을 거두고 남쪽으로 한중을 취하였으며, 아홉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언과 영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성고의 험난함에 의지하여 좋은 땅을 떼어 받아 마침내 여섯 나라의 합종을 깨뜨려서 이들이 서면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하니 공적이 지금까지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소양왕은 범수를 얻어 양후를 폐하고 화양군을 내쫓아 왕실을 강하게 하고 사사로운 가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잠식하여 진나라가 제업을 이루게 했습니다.
이 네분의 군주는 모두 객경들의 공을 얻었습니다.
이런 일로 보건대 객경이 어찌 진나라에 부담이 되겠습니까!
만약 네 분의 군주가 객경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고, 선비들을 멀리 하고 중용하지 않았다면, 이는 부유한 나라를 만들거나 이익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을 것이고, 진나라가 강대하다는 이름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옥과 화씨의 옥새를 가지고 명월 구슬을 드리우고 태아를 차셨으며, 섬리말을 타시며 취봉의 깃발을 세우고 악어의 가죽으로 만든 북까지 지녔습니다.
이 여러 보물들은 단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이를 좋아하시니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야 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야광구슬로 조정을 꾸밀 수 없을 것이고 코뿔소의 뿔이나 상아로 만든 그릇들을 즐길 수 없으며, 정나라와 위나라의 미녀는 후궁에 채울 수 없고 결제와 같은 뛰어난 말로 마구간을 채울 수 없으며, 강남의 금과 주석도 사용할 수 없고, 서촉의 단청으로 채색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후궁을 꾸미고 진열해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기쁘게 하는 것도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면 완의 진주 비녀와 모난 구슬 귀고리, 아호의 옷과 촉의 장식 비단도 폐하의 앞에 바쳐지지 못하며, 풍속에 따라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얌전한, 조나라 여자도 폐하 곁에 서지 못합니다.
무릇 물독을 치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쟁을 타고 넓적다리를 두드리면서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진나라의 소리이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상간, 소, 우, 상, 무는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진나라 땅의 물독을 두드리고 질그릇을 치던 음악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탕하고 사치스러우며 듣기 좋은 음악을 가져다 쓰고, 진나라의 쟁을 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소, 우를 취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외국의 음악이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사람을 쓰는데 있어서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아니하고, 옳고 그름와 곧고 굽음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라면 제거하고 외국의 인사면 내쫓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중히 여기는 것은 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들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를 지배하고 제후에 군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신이 듣자하니 땅이 넓으면 생산되는 양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졸이 용감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태산은 한 줌의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으며 왕은 여러 무리를 버리지 아니하므로, 그의 덕행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동서남북으로 나누지 아니하고, 백성은 외국을 문제로 삼지 아니하고, 사시는 아름다운 것을 가득 채우고, 귀신은 복을 내리는데, 이것이 바로 다섯 제와 세 임금에게 적이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백성을 버리면 적국을 돕는 것이고 객경을 물리치면 제후들에게 종사할 것이며, 천하의 선비들을 물러나게 하면 감히 서쪽(진나라)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어서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바로 “외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행동입니다.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건이라도 보배라 할 만한 것이 많고, 진나라 출신이 아닌 인재라도 충성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지금 객경을 축출하는 것은 적국을 돕는 것이고, 백성이 줄어들고 적국의 인구가 늘어나면, 안으로는 저절로 비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들의 원망을 사게 되어 나라를 구하고 위태로움을 없애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나라에서 토목기술자인 정국을 간자(스파이)로 보내 진나라에 대규모 수리시설을 건설하도록 한 것이 들통나자 진나라의 권력가들이 외국인을 추방하자고 진언하였다.
진왕 영정은 바로 축객령을 내리나 이 모든것이 귀족들의 자리보전과 타국의 진나라 국력약화를 위한 획책인 것을 눈치챈 이사가 간축객서로 반박하였다.
정국은 간자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수리시설(수거)를 건설하는 것이 결국 진나라의 이익이 된다고 설득하여 정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결국 이후 진나라에는 흉년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직도 세상은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있고 자신과 다르면 차별하려고 한다.
현재 본인이 누리는 것이 어디서 온지 생각하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이 넘쳐난다.
다양성 아래서 발전 한다는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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