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이슈

[아랍] 아랍의 봄과 제국주의

Jeffrey Choi 2022. 1. 17. 06:06

영국은 19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이다.

아프리카와 인도등 식민지 수탈사는 말할 것도 없고 호주에 토끼를 풀거나 아프리카 호수에 베스등 대형어류를 방사하는 등 지역의 고유 생태계 파괴도 일삼았다.

각 부족과의 다툼을 이용하여 지역을 혼란하게 만들어 진출하는 방법은 당연하였고 백호주의에 입각하여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행위를 지속하였다.


20세기에 미국이 그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대국으로의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정도는 이전에 비해 악랄하지는 않지만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분단을 고착시키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일은 현실에도 벌어지고 있다.

요사이 미국은 세계경찰의 역할을 포기하며 민감한 문제에 발을 빼고 돈이 되지 않으면 갈등을 봉합조차 하지 않고 물러난다.

 

2010년 튀니지 혁명이후 일어난 아랍의 봄 사태에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위한 미국의 전략적 술수가 있었다.

아랍의 봄은 아랍권 국가들이 석유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수입물품의 가격이 올라 인플레가 발생하며 경제적 문제를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잠재해있던 불만이 퍼진 사건이다.

 

이즈음에 위키리크스와 같은 인터넷 상의 정부의 기밀문서 공개 사이트에서 튀니지 벤 알리 일가의 부패상이 알려지면서 튀지니에서 독재타도를 위한 첫시위가 2010년 12월 18일에 발생한다.

알제리는 같은해 12월 28일에 첫시위가 발생하였다.

튀니지가 2011년 1월에 정부가 타도되고 3월에 정권이 교체된 것에 반해 알제리는 2011년 2월 12일 알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독재는 유지되었다.

리비아는 2011년 1월 13일에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였고 최고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이를 폭력으로 진압하였다.

결국 카다피는 시민군들에게 공격을 받아 2011년 10월 20일 사망하게된다.

 

요르단은 2011년 1월 14일에 첫 시위가 발생하여 2월 1일에 내각이 해산하였다.

 

이후 2011년 1월 17일에 수단이 2011년 1월 21일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시위가 발생하는 등 아랍에서는 연달아 시위가 터져나왔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맨과 같이 독재자들이 축출된 나라가 있었지만 변함없이 정권이 유지된 나라도 있었다.

정권이 유지된 나라도 아랍의 봄 사태이후 시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고 대표적인 예로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참정권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인플레이션과 에너지파동, 실업증가가 실질적인 원인이었던 아랍의 봄은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권만 바꾸었다.

아랍의 봄으로 인해 중동국가는 추산 6천억달러(700조원)규모의 경제손실을 보았다고 알려져있다.

오일머니로 배를 불리던 정치인들을 축출하고 그 돈들이 시민들에게 고루 혜택으로 분배가 되지 못한것이다.

독재정권이 가져가던 오일머니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 기업들의 배를 채우고 있다.

이번 시위와 혁명을 통해 중동은 미국을 포함한 서양 세력의 배를 불려준 꼴이 되었다.

제국주의는 사회의 혼란을 원해왔다.

겉으로는 식민국가를 위해 하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이 자기들의 배를 채운 경우였다.

 

지금 세계는 미국이 포장하고 주도하는 혼란 속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