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이하 체코)에서는 공산당의 개혁이 추진되었다.
소비에트연방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 4대 공산당 당서기였던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였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에 의해 1968년 1월 체코 공산당 서기장을 맡게 되었다.
소련의 비호아래 유순한 개혁을 할 것이라는 브레즈네프의 생각과는 달리 둡체크는 정권을 잡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천명하면서 다당제도입, 언론자유화, 연방제 국가 전환과 같은 민주화를 추진하였다.
1968년 3월 부터 시작된 급진적인 개혁으로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시민사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공산당 내부에도 인사교체가 이뤄졌다.
이에 놀란 소련을 주축으로 한 바르샤바 동맹은 즉각 반발하고 5월에 둡체크를 빼고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체코정부가 개혁의지를 굽히지 않자 8월에 소련이 폴란드, 동독, 헝가리 등 바르샤바 조약기구 5개국 약 20만 대군을 이끌고 체코로 진격했다.
체코의 민주화인사들이 감금 살해당하였으며 둡체크는 소련으로 연행되었다.
체코 정부가 시민과 군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당부하여 다행히 시민들의 희생은 없었으나 개혁파들은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1968년 10월에 소련군을 제외한 군대는 철군하였고 프라하의 봄 진압 사태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억압적통치를 강화하게 되었다.
서방세계는 이 진압사태에 개입을 검토하였지만 사태가 2달만에 마무리되면서 물러섰다.
알바니아는 프라하의 봄 진압의 항의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탈퇴하였다.
둡체크는 큰 처벌없이 다시 체코로 돌아왔지만 죽은 듯 지내야 했다.
프라하의 봄은 독재가 판치던 당시 세계사의 큰 영향을 주었다.
소련은 다시는 같은 방법으로 인접국들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게 되어 20년 뒤에 일어나는 동유럽 민주화를 막을 수 없게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1980년에 군부독재에 맞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시민혁명인 서울의 봄 사건은 프라하의 봄의 재현이었다.
결국 체코는 동유럽 민주화 분위기가 폭발하는 1989년에 전국민적 시위를 시작한다.
그해 11월 17일 부터 학생시위가 시작되고 27일까지 전국민적 시위가 계속되는데 시위 최대 참가인원이 77만명에 달하였다.
전국적인 민주화 요구에 체코공산당은 결국 정치개혁을 선언하고 다당제도입과 자유선거 실시등을 약속한다.
1990년 6월 선거에서 공산정권이 몰락하면서 시민들이 시위를 멈췄는데 이것을 벨벳혁명이라고 한다.
프라하의 봄 부터 벨벳혁명이 이뤄지기까지 거의 한 세대가 지났지만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은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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