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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펜글씨교본

Jeffrey Choi 2022. 3. 4. 07:30

글을 알아만 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글씨의 생김새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컴퓨터가 널리 쓰이지 않는 시절도 그랬는데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손글씨는 더 천대받는다.

 

학생 때 부터 수업시간에 노트에 필기를 해도 나중엔 뭘 적었는지 알아보기 힘들어 유추를 해야 할 때가 있을 만큼 글씨가 괴발새발이었다.

그 때마다 '천재는 악필이다'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말을 위안삼았다.

 

수학능력시험은 객관식 위주이므로 글씨와는 상관 없었기에 글씨로 인한 불이익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 수업은 서술형 시험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시간내에 써 내려가야 하는데 바쁘면 글씨는 더욱 이리저리 날뛰었기에 돌이켜보면 내용도 물론 그렇게 밀도가 있지 않았겠지만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어 점수를 짜게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 생활도 노트북으로 기안문서를 작성하여 보고할 때 서명만 하는 형태라 글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헌데 글씨를 교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은 후 였다.

이런 국가 자격증 시험은 보통 논술형이라 심사위원이 글씨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했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는 지도를 받거나 예쁜 글씨를 모방을 하는 2가지 방법이 있었다.

무작정 교본을 구했다.

샀는지 집에 굴러다니던 걸 쓰기로 한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내용에 60년대 기안용지가 소개되어있는 옛 스런 교본이었다.

세로쓰기 연습이 있는만큼 아무리 최신으로 예상한다고 해도 출간년도가 2000년을 넘지는 않는 듯 했다.

글씨 교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필법부터 안내하고 있다.

아라비아 숫자 쓰기도 포함되어 있는데 글씨의 경사가 중요하다고 설명되어 있다.

책은 각 자음, 모음등의 글자를 연습하고 부록을 통해 습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한자 혼용시대의 습관처럼 전국 지명쓰기에는 시들의 이름마다 한자도 병기되어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며 쉬는 시간마다 글자를 따라 썼다.

책에 있는 정자체를 수십번 따라 쓰고 교재를 필사하며 연습하자 잘 쓴 글씨의 원리가 뭔지 알 수 있었다.

 

1. 글은 크게 써야한다.

2. 아래와 위의 자음의 크기와 위치를 균형있게 맞춰야 한다.

3. 아래 위 자음들 사이 중간에 위치한 모음은 길게 빼면 시원하게 보인다.

4.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직선은 시작 시점에서 살짝 꺾은 후 망설임 없이 쭉 그어준다.

 

교재 덕분에 글씨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며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이후 다 못한 분량은 추후 머리를 비울일이 있을 때 하려고 놔뒀지만 그런 힐링시간을 따로 빼는 일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없었다.

 

아직도 1/3 정도가 빈칸으로 남겨져 있는 총 136페이지의 얇은 책을 올 봄에는 다 적고 분리수거장에 내어 놓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